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5년 '모스크바의 메아리'라는 라디오 방송국 간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의 어떤 업적이 역사책에 실릴 것 같은가?" 이 간부는 당시 푸틴 대통령이 듣고 싶어 한 답은 분명했다고 훗날 토로했다. 그건 '소련이 우크라이나에 내준 크름반도를 푸틴이 되찾았다'라고 기록되는 것이었다. 러시아 출신의 역사학자 세르히 플로히가 쓴 '푸틴의 전쟁'이란 글에 나오는 일화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 더 큰 업적을 쌓고 있다. 종전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언제부턴가 푸틴 대통령을 침략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얼마 전 백악관을 찾았다가 밥도 못 먹고 쫓겨났다. 침략자에겐 면죄부를, 피해자에겐 수모를 안긴 셈이다. 무릇 전쟁에서 가장 큰 전리품은 역사적 서술의 비호를 받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나라를 침략해 영토로 삼는 것은 금기였다.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국경의 변경으로 귀결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국제사회의 규범과 강대국의 절제가 현상을 유지하는 쪽으로 작동했기 떄문이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통째로 점령했을 때도 이라크의 국경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침략에 의한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의 논리를 거침없이 휘두른다.
푸틴 대통령은 1991년 소련의 붕괴를 '금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으로 부른다. 소련이 해체되자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15개 국가가 독립했는데, 이로써 한때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던 '철의 장막'이 사라졌다. 외침에 대비해 모스크바로부터 최대한 멀리 국경을 설정하려는 소련의 팽창주의 전략도 파탄에 빠졌다. 푸틴 대통령은 그런 역사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고, 지금까지 성공했다. 공교롭게도 과거 소련의 붕괴를 재촉했던 미국이 지금은 푸틴 대통령의 복수에 힘을 보태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복수는 우크라이나에서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전문가들은 분리주의 세력이 강한 몰도바나 러시아와 인접한 발트 3국, 폴란드 국경에서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고 점친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승리한다면, 전세계에서 제국주의가 부활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지난해 6월 한 칼럼에서 호모 사이엔스라는 생물종을 향해 던진 경고다. 침략에 대한 금기가 깨진 세상은 아주 위험하다.
유강문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논설위원. 한겨레신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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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내 생각을 말해보자면, 논설위원의 말에 어느정도 공감하지만 한 나라의 대표로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행보가 조금은 더 조심스러워야 했다고 본다. 우크라이나 국민들 입장에서 자신의 나라 대통령이 그런 굴욕을 겪었을 때 당연히 기분 나빴을 것이고, 그리하여 우크라이나 SNS에 양복에 관한 부정적 반응에 대한 글도 많이 올라오며 젤렌스키의 행보를 찬성하는 여론도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는 좀 더 미국과의 관계에 신중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나도 영상을 접했을 때 미국 대통령과 부대통령, 미국 기자까지의 언행이 기분 나빴고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표로서는 개인적 굴욕보다는 자국의 평화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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