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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부/나를 이해하기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

by 일상변주가 2023.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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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어서 슬픈 일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못 견딜일은 젊어서 저지른 온갖 못난 짓거리와 비루한 삶에 대한 기억들이다. 그 어리석은 짓, 해서는 안 될 짓, 함부로 써낸 글, 너무 빨리 움직인 혓바닥, 몽매한 자만심, 무의미한 싸움들, 지겨운 밥벌이, 계속되는 야근과 야만적 중노동... 이런 기억이 몰고 오는 슬프면 뉘우침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한이나 자책일 뿐이다. 그 쓰라림은 때때로 비수처럼 가슴을 찌른다. 아아, 나는 어쩌자고 그랬던가. 그때는 왜 그 잘못을 몰랐던가.

 

 이보다 더 슬픈 일은 그 악업과 몽매를 상쇄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미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절벽과 마주선다. 

 이런 회한과 절벽을 극복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 절벽을 직시하는 힘으로 여생의 시간이 경건해지기를 바란다. '경건'이라고 쓰니까 부끄럽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경건성을 상실한 지가 얼마나 오래인가.

 그러므로 죽음을 생각하기보다는, 여생의 날들을 온전히 살아나갈 궁리를 하는 쪽이 훨씬 더 실속 있다. 

 

 너무 늦기는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날이 저물어서 빛이 물러서고 시간의 밀도가 엷어지는 저녁 무렵의 자유는 서늘하다. 이 시간들은 내가 사는 동네, 일산 한강 하구의 썰물과도 간다. 이 흐린 시야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연히 드러난다.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 김훈, 연필로 쓰기 중

 

오늘 아침 읽은 이 글이 내 마음에 박혀 잘 쓰지 못하는 글이라도 끄적이고 싶게 만들었다. 모든 글이 마치 내것을 끄집어 내 써내려간 것 같지만서도, 특히 옮겨논 글의 후반부의 부분이 나이들면서 느끼는 기쁨 중의 하나이다. 지금보다 세대가 하나 적을때까지는 내 몸이 잠자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마냥 병든 묵처럼 흐물쩍대며 띵한 상태로 지내왔다. 물론 그 흐물쩍대는 묵도 감정은 늘 과한 상태라 속이 들여다보이는 상태로 감정을 보이며 몽매한 자만심을 안고 다니곤 했다. 지금도 물론 속이 들여다보이는 묵 상태인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때보다는 조금은 옥죄던 자의식의 경계가 조금은 무너지고 흐리멍덩해지면서 조금은 편안해졌다. 나이가 더 들면 이 상태가 좀 더 강해져서, 나를 좀 더 편안한 상태로 살게 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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