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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부

매너가 꼰대를 안 만든다

by 일상변주가 2019. 5. 5.

매너

명사, 행동하는 방식이나 자세. 몸가짐, 버릇, 태도로 순화할 수 있는 말.

매너를 설명하라고 하면 또렷이 표현하기가 모호한데 사전을 찾아보니 몸가짐, 버릇, 태도로 바꿔서 표현할 수 있다고 하니, 매너에는 저 3가지가 모두 포함되는 뜻이 들어있다 해도 되겠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매너'에 대해서 생각하고 리액트하게 되는 상황이 많다.

대부분의 리액트는 주로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매너 좀 지키지.'라거나 '매너 좋네,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두 분류로 나뉘게 되는 것 같다.

Manners, Maketh, Man.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Do you know what that means? (무슨 뜻인지 아나?)
Then, Let me teach you a lesson. (내가 알려 주지.)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본 사람이라면 저 장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주인공을 자극하는 몹쓸 무리를 처단해주길 바라며 맘 졸이던 관객들은 그가 터뜨리는 사이다에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이 장면을 패러디한 영화 및 광고 또한 무척 많았던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매너'를 중시하는지, '매너를 지키지 않는 자'를 싫어하는지 대강 봐도 알 수가 있었다.

학교, 회사 등 사람들이 닿는 어떠한 곳이나 매너의 경계를 오묘하게 어기는 '꼰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아버지'나 '선생님'등의 고루한 어르신들을 꼰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아랫사람(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들을 가르치고 평가하며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종하려 드는 사람들을 주로 꼰대라 부르는 등 범위가 넓어진 것 같다. 매너를 지킨다는 것은 사람 간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고 배려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꼰대는 그 거리를 파괴하기를 선호한다.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꼰대라고 불리는 것을 못 견뎌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꼰대가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을 너희도 알게 되어서 세상 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거고...', '내 말대로 하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꼰대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요즘같이 개인마다 개성과 행동 양식을 중시하는 사회는 누군가가 내 생각을 바꾸려고 느껴지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경향이 짙어진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 꼰대의 성향을 또렷이 드러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조금 알고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을 깨고 살아가게 된 것이 나에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나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을 버리고 난 후로 예전보다 사람들이 나를 편하게 대하는것이 느껴진다. 과거에 내가 했던 몇 가지 행동을 '꼰대 짓'이나 '철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반성하고 있다. 부끄러워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꼰대의 성향이 더 강해지는 거라고 알고 있지만 살아온 환경과 분위기가 그 사람을 순식간에 꼰대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나이보다는 환경이 꼰대를 만든다는 생각이다. 더 늦기 전에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꼰대들은 자기가 꼰대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꼭 그러라는 것은 아닌데 말이야~", "너희 좋아지라고 하는 말인데~" 등의 말로 면피를 하려고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그 말이 맞고 틀리는 것의 여부보다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말투에 거부감을 느끼므로,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대부분 회사에서 주간 회의 시간마다 상급자가 직원들에게 하는 '덕담'은 더 이상 덕담으로만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최근 교과서에서나 나올 것 같은 꼰대 짓을 하는 사람과 함께 일을 했다. 직급이 같은 나에게는 '꼰대 짓'을 하지 않았지만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상대를 자기 생각의 틀에 껴맞추려고 애썼다. 그 사람이 제일 잘하는 말이 "알아", "이리 와봐, 내가 알려줄게', "그건 말이야~" 였다. 내가 남보다 많이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모두 잘난 자신에겐 못 미친다는 행동이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고 합리화하고 되려 다른 사람의 탓을 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사람에게는 늘 악취가 났다. 쉴 새없이 피고 오는 담배 때문일 수도 있고, 씻지 않는 이유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에 악취가 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악취를 피하고 싶어서 마스크를 쓰고 이 사람이 하는 말 하나 소리 하나도 듣기 싫어서 이어폰을 끼고 일을 하기도 했지만 꼰대 때문에 내 회사생활이 망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공기 중 떠다니는 먼지 하나라고 생각하자는 최면을 걸며 지내자 좀 괜찮아졌다.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다. 주변의 사람들 대부분은 이 사람의 말을 무시하거나 배제하고 얘기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이 꼰대도 조금씩 자신의 꼰대 짓을 덜하기 시작했다.

어제 티비를 돌리다 보니 동네 이장들을 패널로 모아서 진행하는 예능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예능의 주제는 '나는 꼰대다/아니다'였고, 각 패널은 자신의 앞에 있는 O/X표를 가슴앞에 들고 자신의 변호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중에 O를 들고 있던 이장이 그런 말을 한다.

"요즘 애들을 보면.. 꼰대가 꼭 있어야 해!"

저 말을 듣고 피식하고는 바로 채널을 돌렸다. '요즘 애들'이라는 말은 그들이 요즘 애들이던 시절에도 꾸준히 듣던 말일것이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시작해오던 때부터 '요즘애들'은 자기 세대와 다르게 버릇이 없거나 생각이 없다는 표현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가끔 '꼰대 짓'을 하고 싶게끔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정한 라인을 넘어서는 경우에는 속에서 '꼰대스런 말'이 불쑥불쑥 올라오지만 참는다. 아직도 나는 꼰대 유전자가 남아있고 조절 중이다. 아마 평생 조절해야 하지 않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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