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데드를 보고 있다. 이 드라마의 인기가 치솟을 당시엔 좀비물에는 영 관심이 가질 않아 다른 미드들을 찾아보곤 했는데, 어느새 시즌 3을 보는 중이다. 출현하는 좀비들, 그들과 사람들이 싸울 때의 장면은 정말 실감난다. 실제 좀비이고 정말 죽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끔 만든다.(제작 관계자들이 보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세상이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처신하게 될까하는 상상에 빠지게 된다.
어떤 커뮤니티의 설문조사에 이런 질문과 결과가 있었다.
[만약 좀비가 세상에 나온다면 당신이 할 행동은?]
1. 집에 들어가서 바리게이트를 치고 방에 처박혀 컴퓨터나 한다.(40%)
2. 무기를 구해서 좀비 무쌍을 찍는다.(31%)
3. 좀비 그런거 내가 알 필요 없다, 잔다.(17%)
4. 자살한다.(4%)
5. 나도 좀비가 된다.(11%)
물론 질문 자체가 '좀비가 세상에 나온다면'이라는 애매한 설정이기 때문에 대답이 여러 가지로 갈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의 영향 때문인지 2번을 선택했다. (집에만 처박혀 있다간 식량이 떨어져 아사하게 것이며, 무시한다고 해서 세상변화에 영향을 안 받을 리도 없다. 자살할 생각은 전혀 없고, 좀비가 될 생각은 더욱 없다.) 드라마 영향 때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용기 있게 대처할 사람들도 흔치 않지만 제일 중요한 자기방어를 할 무기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될 것 같다. 그렇지만 미드에 흔히 등장하는 무기들을 우리나라에선 찾을 수 없다. 기껏해야 주방에서 쓰는 칼따위 뿐일것이다. 그렇다고 좀비가 출몰하게 될 지 모르니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무기 자율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우리나라는 좀비가 출몰하기도 전에 준비되지 않은 무기 자율화로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본다.
지금부터는 약간의 스포가 될지도 모르니 워킹데드 시리즈를 시청할 계획인 분은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주인공 무리들은 처음엔 '인간 됨'이나 '인본주의'를 중요시 하며 '워커(좀비)'가 아닌 '사람'은 절대 죽이면 안 된다는 철칙을 세웠었지만 갈수록 자신들의 그룹을 위해서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해치는 것에 망설임을 갖지 않는다. 세상이 더욱 살기 힘들어짐에 따라 집단이기주의의 성향이 짙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집단이기주의에 의한 뉴스를 듣거나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님비(NIMBYs, Not In My Backyard Syndrome)' 또는 '룰루(LULU, Locallly Unwanted Land Use)'로 불리기도 하는 이 현상은 자신의 구역을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변의 세력을 모아서 집단행동을 하는 인간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예로 주변에 혐오시설이나 환경파괴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데모를 하는 경우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우가 아닐 경우에는 집단이기주의에 혀를 끌끌 차지만 자신의 경우가 되면 인본주의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급속화된 도시화 과정으로 기존의 공동체가 많이 무너져 타인들과 생존경쟁을 벌이며 다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혈연, 지연, 학연 등과 같은 연줄에 의존하며 님비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연줄로 인하여 말도 안되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경우를 보거나 이기적인 행보를 지켜볼 때 우리는 금새 분노하고 만다. 그러나 연줄로 인한 혜택을 자신이 받게 되는 경우는 어떠한가. 되려 연줄을 자랑스러워하고 소문내는 경우도 수없이 봤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나쁘다고 배척할 수만은 없다. 나와 연줄이 있는 사람을 돕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러한 연줄이 되기 위해 혹은 연줄을 잡기 위해 노력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은 탐욕으로 인하여 모순적이며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욕심에 눈이 멀어 잘못된 과오를 범하기도 하고, 욕심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여 자신까지 속이며 이득을 취하고는 한다. 애덤 스미스는 모든 사람은 사실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양심을 가지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는 경우에 한하며,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리는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 내부의 재판관(양심)조차 우리의 이기적인 감정의 폭력과 불의에 의해 부패될 위험에 자주 처하며, 진정한 상황과 다른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종종 유혹당한다"라고 지적하고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자기 기만은 인간질서의 무질서 중 절반의 근원이다"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본능을 이성으로 누르고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이다. 사람은 불완전하며 실수하기 쉬운 성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이해관계나 편견 등의 독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사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