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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부

워라발

by 일상변주가 2019. 5. 5.

 

워크 라이프 발란스(Work-Life balance) - 요샛말로 줄여 워라발(TVN 예능 알쓸신잡에서 나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일이 우선이 아니라 나 자신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어린 시절에 여러 가지 다양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커리어우먼'이었다.

 그 나이때의 내 머릿속 '커리어우먼'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면서도 캐주얼 정장 스타일의 옷과 세련된 표정, 뾰족구두와 가방 및 서류를 들고 유리로 된 빌딩 숲 사이의 회사를 힘찬 걸음으로 오가는 모습이었다.

​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면 어느 정도 그 어린 나이의 나에게 "어때, 나 좀 커리어우먼 같아?"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은 되지 않나 하고 수줍게 말을 건넬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라, 그러면 꿈을 이뤘네?"라고 응답한다면 나는 곧 "하아...."하고 한숨으로 응답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어린 나이의 내가 원했던 모습은 막연했지만 한켠에 늘 '그러면 행복할 거야.'라는 게 전제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하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응, 나 행복해!'라고 쉽게 맞대응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네가 욕심이 너무 많아서 그래, 너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말로 나를 자제시키려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 맞다.. 나도 그만두고 싶다-하고 같은 기분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것이 되었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 어딘가에 일과 삶을 분리시키는 학원 같은 게 있다면 당장 다니고 싶다. 제발 머릿속 좀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늘 머릿속이 어지럽고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아마 그런 느낌이 글에도 오롯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글 쓰는 것도 늘 걱정이 된다.

"참~ 걱정도 많다. 너는 무슨 걱정을 그렇게 사서 하니?"

​ 맞다. 나는 걱정을 내 시간을 주고 사서 하고 있다. 낮에는 일하면서 걱정하고, 밤에는 눈감고 침대에 누워서 걱정하느라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늘 쾡한 몰골로 살았던 날들도 있었다.

​ 언젠가부터는 가슴 한켠에 가상의 사직서를 품고 다녔다. 일 혹은 상사 및 동료 때문에 힘들거나 나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많고-그 사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설전을 벌이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고안해 낸 것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너무 목메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마음속에다 사직서를 조금씩 쓴 것이다. 그렇게 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기는 했다.

​ 언젠가 나의 상사께서 "넌 왜 일하니?"라는 질문을 했다. 그때의 나는 "일하는 게 즐거워서요. 전 즐거워서 일 하는 거예요"라는 답을 즉각 했었다. 일에서 성취감이 느껴질 때 누구나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이 성취감이란 것이 자존감을 조금 더 올려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인정받고 칭찬받고 좋은 결과가 나올 때는 이 맛에 일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면 그 날은 퇴근 후에도 좋은 기분이 유지되고, 워라발이 수월해졌다. (잠도 잘 자곤 한다!) 그런데 그 반대가 되면 내 일상은 오히려 더 일(work)로 가득해진다.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받지 못한 아쉬움, 내 마음에 차지 않았던 나의 행동들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쳤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날 그렇게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회사 같은 거 바로 때려치우고 나 혼자 지내는 은둔생활을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은둔생활을 하면 내 고민이 사라질까? 왠지 그것도 아닐 것 같다.

​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사표를 결국에는 던지고 나왔던 날이 생각난다.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정신없었다. 끝까지 정신없게 만드는 회사구나, 하고 혀를 내둘렀었다.

​ 회사를 옮기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 비교적 전의 회사에 비해 조직원들의 워라밸이 잘 성취되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회사의 임원진들 몇명은 워라밸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어보인다. 그들을 보면 사생활을 유지하기도 아슬아슬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주위의 조직원들은 그만큼의 금전적인 보상과 사생활을 맞바꾼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나 또한 그들을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워커홀릭이라는 용어를 지성을 가진 현대직장인이라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9시출근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지만 상사가 권유하는 10시출근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저녁의 1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금쪽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워라밸은 무엇일까?

​ 위의 질문은 얼마 전 친한 동생에게서 들은 "우리만의 루틴을 만들어봐요"라는 말과 통한다. 최근들어 '루틴'이나 '리츄얼'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시간이 주어졌을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부터 시작해야 할 듯한데,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핸드폰과 타블렛이 내 리츄얼의 바탕이다. 전자기기를 손에 쥐고 눈으로 보고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가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계속 이어진다. 세상이 많이 변하여 스마트한 기기가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퍽 많이 줄었기에 이것이 없으면 공황상태가 올지도 모르겠다. 얼마전에 라섹수술을 한 친구가 일주일 내내 티비와 휴대폰 등의 전자기기는 일체 쳐다보지않고 라디오만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이게 내게는 가능할만한 일이 아닐거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글을 쓰기 위해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고 휴대폰에 뜬 알람을 수시로 읽고 있다.

​ 낮에는 업무때문에 어쩔수 없이 하루종일 모니터를 쳐다봐야만 한다. 해야할 일이 디자인이기 때문에 모니터의 밝기를 어둡게 조절하지도 못한다. 퇴근시간이 되면 드디어 모니터를 끄고 백색소음을 들으며 지하철을 탄다. 다른이와 같이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저녁에 집에 도착하면 저녁샤워를 하고 밥 준비를 한다. 준비가 된 후엔 휴대폰이나 타블렛, 혹은 플레이스테이션을 켜서 넷플릭스를 실행한다. 밥을 먹으며 보고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한다. 밥을 다 먹고 소화를 시키며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 와중에도 내 눈은 세팅해놓은 휴대폰 동영상으로 향한다. 요가를 하기위해 타블렛을 켠다. 유툽에 올라가 있는 요가동영상을 보며 따라한다. 잘 시간이 되면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본다. 잠이 오면 휴대폰을 베게 옆에 놓고 잠이든다. (별 것 없는 저녁시간이지만 이것만하더라도 자기전까지의 시간이 빠듯하다.) 자기전에는 숙면을 위해 휴대폰을 보지 않는것이 좋다고는 하는데, 그걸 앎에도 굳이 보는 이유 또한 일과 관계된다. '일과 관련된 생각'이나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 따위를 생각하지 않으려 주입되는 텍스트를 읽어 생각을 끊으려 함이다.

​ 이 정도 강도의 스마트기기 사용이니 이것을 떼놓고 나면 나의 리츄얼은 리셋이 되어야만 한다.

​ 요즘은 그래도 어느정도의 워라밸이 가능한 수준이다. 낮에 회사에서 일어났던 일로 인하여 저녁에 집에서 영향받는 일이 거의 없다. 임원진의 궁극적인 업무 목적이나 직원들에게 바라는 정도가 이를 크게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이전회사에서 워라밸이 어려웠던 이유는 퇴근후에도 끝나지 않는 업무 때문이었다. 오늘 한 일이 내일 끝나지 않고 내일 시작한 일이 모레, 글피..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스토리였다. 퇴근 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단체카톡 대화방과 업무문의 때문에 일과 삶의 구분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퇴근후에 회사업무나 직장동료가 생각나질 않는다. 생각이 난다고 해도 딱히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예전에는 '애사심'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집에서도 '일 생각' 회사에서는 더욱 더 '일 생각'을 했다고 하면 지금은 '각자 맡은 업무를 충실히'라는 말이 회사임원진들의 모토다. 그것만 생각해도 '이직은 참 잘한 일'이라고 결론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고민은 계속된다. 워라밸의 양보다 질적인 고민으로 바뀐것이다. 어떻게 퇴근후의 시간을 질적으로 향상하여 사용할 것인가? 이것에 대한 고민이다. 앞으로의 고민의 결과가 다음 글의 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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