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아지 파였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여러 차례 호소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엄마는 집 안에서는 사람만이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생각했으나 오뉴 얼 풀어놓은 강아지마냥 지 방을 엉망으로 만드는 개딸래미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방 안 구석구석은 내가 쓰다 쟁여둔 물건들로 가득했고 간혹 맘먹고 청소를 한다 해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여기서 저기로 옮겨질 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하나, 아니 청소에 흥미 없는 오라비까지 합치면 둘이 있으니 강아지는 입밖에 꺼내면 안 될 금기어였을 것이다.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건 아버지의 사업터 근처의 마당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였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마당에 조그마한 강아지 집이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 데려온 강아지는 털이 보송한 어린 녀석이었다. 부모님께서 딸래미 소원을 들어주고자 일명 '똥개'라고 불리는 종의 녀석을 주변의 다른 집에서 하나 얻어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마침 와 계셨던 할머니가 이 녀석의 이름을 '자꾸'라고 지으셨다. 사람 말 잘 듣고 잘 열리고 닫히라는 의미로 쟈크(지퍼, zipper), 어르신들이 많이 쓰셨던 일본식 발음이었던 '자꾸'가 첫 강아지의 이름이었다. 생에 첫 강아지라는 생각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나는 하루 종일 자꾸와 함께했다. 하지만 어린 녀석을 어미에게서 떼어 와서 그랬던 건지 내 치근덕거림에 질린 것인지 다음날 이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린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자꾸를 찾았고 부모님과 할머니까지 합세하여 동네를 뒤지고 다녔다. 찾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꽤 상해있었던 찰나에 집 앞 하수구에서 그 녀석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속도로 그곳으로 가자 자꾸가 하수구 구석에서 떨며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른들이 간식으로 달래며 겨우 꺼내 집으로 데려온 뒤 목욕을 시켰다. 그 후로도 며칠 집구석에서 잘 나오지 않다가 적응이 되었는지 사람을 보면 꼬리를 흔들며 혀를 내어 웃어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공장과 가까운 터에 새 집을 짓는 와중에 잠깐 살던 집이었던지라, 곧 이사를 했다. 그 집은 마당이 더 넓어 더욱 쾌적하게 함께 놀 수 있었으나 쉽게 흥미를 잃는 성격 때문인지 자꾸와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 녀석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중학생이 되던 시절까지 모두 지켜봐 주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가 앞다리와 뒷다리를 일자로 뻗고 마치 동상이 넘어진 것마냥 미동 없이 누워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던 나는 "자꾸야 뭐하니" 하고 다가갔다. 자꾸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것마냥 움직임이 없었다. 무서워져서 주위에 있던 막대기로 살짝 자꾸를 건드려봤다. 그래도 전혀 미동이 없었다. 막대기를 던져버리고 울면서 집으로 뛰어갔다. 베란다 사이로 보이는 자꾸의 모습에 크게 절망하며 울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부모님의 말씀으로는 동네 사람 누군가가 자꾸에게 쥐약을 먹인 것 같다고 하셨다. 남의 마당에 키우는 개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짓을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 후로도 우리 집엔 큰집에서 데려온 진돗개 복실이와 뒷마당에서 키우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똥개 두 마리까지 하여 계속해서 개를 키웠지만 자꾸에게 미안한 마음이 계속 남아있었다. 시간이 지나 기억에서 많이 희미해졌지만 내 첫 강아지로의 기억은 영원할 것이다.
우리 집에서 제일 오래 살던 개는 큰집에서부터 살던 복실이었다. 똥개와 달리 기품이 넘치고 힘도 무척이나 좋았다. 자꾸에게 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 복실이에게는 시간을 더 많이 내주기로 했었다. 한번 산책하러 나가면 질질 끌려다니기 일쑤였고 장난을 치다가도 내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곤 했다. 그 녀석은 할머니가 되어 기력이 쇄 할 때까지 우리 집에 같이 살았고 고등학생이던 때 집으로 돌아오니 복실이가 보이질 않아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죽어서 산에 묻어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슴이 너무 아파 그 후로는 개를 키우지 않았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라는 마인드로 계속 살아왔다. 하지만 가끔 길이나 옆집의 강아지들을 마주치면 너무 무서울 때가 많았다. 잇몸을 가득 드러내고 공격적인 짖음을 내뱉으며 내게 돌진하는 경험을 한 후로는 길에서 작은 강아지를 마주칠 때면 경계부터 하게 된다. 큰 개는 오히려 상냥하게 느껴지지만 가끔 뉴스에서 나오는 물림 사고를 들으면 또 무섭게 느껴진다. 하지만 또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서 큰 개를 키우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 개의 이름을 자꾸로 지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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